길을 걸으며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를 다녀오다

우헌 2014. 8. 18. 17:39

2014.8.15(금)

 

오늘은 제69주년 광복절이다

어느덧 내년이면 광복70주년!

숨실틈없이 달려온 지난 역사의 뒤안길에 우리 민족은 너무나 많은 소중한 피와 땀을 흘린 댓가로

지금의 번영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그 생각끝에 한국전쟁시 가장 치열한 전투중의 하나로 기록되는

백마고지 전투라는 역사적 현장에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떠올라

3일간의 연휴라 느긋한 마음,

여름휴가도 다녀온 탓에 특별히 가족들과의 외출도 없어

오전에 집안 정리를 좀 하고 12시30분에 도봉역에서 동두천행 전철을 이용하여

동두천역에서 1시 30분에 백마고지역으로 향하는 경원선 통근열차를 타다!

 

느긋한 마음과 달리

경원선 통근열차엔 빈좌석이 없어 열차 출입문 계단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백마고지역으로 향한다.

 

신탄리역까지는 경원선을 타고 몇 번 가보았지만

열차로 백마고지역 까지는 초행길이었고

백마고지역을 버스로는 간적이 있었지.

 

작은놈이 작년에 이곳 철원 5사단에서 군복무를 마치게 되어

군복무 기간중 금학산, 고대산, 노동당사, 고석정, 도피안사 등등

철원군 여기저기를 둘러볼 기회가 있어

이곳 철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철원을 방문할 때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백마고지를 이제야 가게되는것이다!

 

어쨋든 이 전투 및 한국전쟁에서

피끓는 젊음을 사랑하는 내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에게

깊이 머리숙이며 뜨거운 가을 햇볕 아래 도보답사를 시작하다!

 

 

백마고지역은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경원선의 역으로 현재 경원선의 시종착역이며 동해북부선 제진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최북단역이다.

2012.11.20.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휴전 이후 단절됐던 경원선 신탄리역에서 철원간 5.6km 구간의 철도 복원사업을 마무리하여 경원선 백마고지역이 개통되었다

 

 

 

 

 

 

 

 

 전면에 보이는 산이 "소이산"이고  그 산 왼쪽 앞쪽으로 노동당사가 있는데 여기선 안 보인다.

소이산은 별로 높지는 않지만 군사적으로 이곳을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고지라고 함.

지금은 정상을 오르는 산길 정비가 잘되어 있다고 함!

 

화면 왼쪽 뒤에 우뜍솟은 산이 철원 송읍에 있는 금학산,  오른쪽이 연천군 신탄리 고대산 !

 

 

 작은애가 군복무하던 동송읍은 우회전

 

 

 

전형적인 우리나라 농촌의 초가을 풍경 

 

 

 

 

 

 

백마고지전투 개요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1950. 6.25~1953. 7.27.) 기간 중 가장 치열하게 고지 쟁탈전을 전개했던

1952년10월, 철원에 위치한 작은 고지를 놓고 국군 제9보병사단(사단장 : 김종오장군)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쟁탈전을 벌인 끝에 9사단이 승리한 전투를 말한다.

1952년10월 6일부터 10일 동안 불과 395m밖에 되지않는 고지를 빼았기 위해, 중공군 1만여명이 전사상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국군 제9사단도 총 3,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발사된 포탄의 수는 아군 219,954발, 적군 55,000발 등 총 274,954발이다.

결국 세계 전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치열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을 10일 주야로 반복한 끝에 이 고지를 아군이 차지했다

 

 

 

 

 

 

백마고지전승비

이곳은 1952.10. 6.~10.15.까지 중공군과 12차례의 공방전 끝에 대승을 세움으로써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던 조국을 구하고 살신보국

(殺身報國)한 영령들이 잠든 곳이다. 이에 선배전우들의 얼을 높이 기리고 그 뜻을 오늘의 백마정신으로 계승하고자 여기 전승비를 세우다.

 1994.10.15

백마부대 장병일동

 

 

 

 

 

백마고지 전적지의 자유의 종

 

건립에 부치는 글

이곳에는 아직도 포성이 들리는 듯 하다.

참혹한 전란으로 평화롭던 이 강산이 폐허로 변했던 그 시절 용사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어 저 백마고지를 향해서 울부짖으며 돌진해갔다.

세월은 모든 것을 망각하는가

기억하는 이는 점점 세상을 등지고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를 되묻고 있다.

이제 우리는 피흘려 지킨 자유의 소중한 값을 큰 소리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우리 조국의 영생번영을 위한 것이다.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이 전승지를 님들과 후손들에게 바친다.

 

보병 제5사단

사단장 소장 김봉찬

 

 

백마고지 명칭의 유래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으로 전쟁전에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전선이 고착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제(瞰制)하는 중요 지형지물로 유명해진 곳이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 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의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 이라고 대답하여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격전을 치루고 난 후 처절한 산의 형상이 백마의 와상과 같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전투를 수행한 제9보병사단의 부대 애칭을 백마부대라 부르게 되었다

 

 戰爭과 平和!

 

 

 

 

 이제는 평화스런 넓은 들판! 

 

 

 아!

이런 평화로움을 만들기 위해 그 수많은 젊음의 뜨거운 피를 여기에 흩날렸구나!

 뒤 돌아오는 길에 다시보는 백마고지 근처 산야

가운데 빼족한 산이 북한땅인 고암산 (일명, 김일성고지) 라고 한다!

 

날씨가 엄청 뜨거웠다.

태양에 노출된 얼굴이나 팔뚝이 익어가는 듯한 강렬한 햇볕이였지만

그날 흘리신 호국영령들의 그 뜨거움 젊음의 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수많은 희생의 덕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한번 각인할 수 있었던 도보탐사를 여기서 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