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유시화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그 하루를 정원에서 보내리라.
허리를 굽혀 흙을 파고
작은 풀꽃들을 심으리라
내가 떠나간 뒤에도
그것들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있도록,
아마도 나는 내가 심은 나무에게 기대리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새와 곤충들 또한 나처럼 그 나무에
기대는 것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지막으로 흙 위로 난 길을 걸으리라
걸으면서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진실했던 때를 기억하리라
아마도 그것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
그어느 날보다 후회하지 않는
사랑하라, 상처가 기적을 선물할 때까지
이 희숙
하나의 사랑을 보낸 가슴엔
더 이상 봄날은 없다고 말하자 마라
척박한 가슴에도
거짓말처럼 봄은 오나니
사랑하라
처음처럼 마지막이듯
사랑하라
상처가 기적을 선물할 때까지
사랑하라
비바람에 견딘 나무가
아름다운 꽃과 튼튼한 열매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존 재
조병화
길가에 아무런 이유없이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은, 요란은 하지 않아도
곁에 피어 있는 것만으로
길 가는 사람에게 다정한 위안을 준다
길가에 아무런 까닭없이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은, 요염은 하지 않아도
곁에 피어 있는 것만으로
먼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따뜻한 큰위로를 준다
한없이 넓은 들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가에
아무런 따짐없이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곁에 피어 있는 것만으로
먼 길을 가는 적막한 길손에게
한없이 포근한 사랑을 준다
아, 그와도 같이
들꽃은 아무런 약속은 없다 해도
길가에 피어있는 것만으로도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숨을 그리움과 기쁨을
때로, 때때로, 수시로, 항상, 황홀하게
몰래 곱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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