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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글

무료신문구독

신문을 무료구독하며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어제처럼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조간신문이 놓여 있는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두리번 거린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신문이 반듯이 놓여 있었다. 나는 한달전부터 우리 식구의 동의나 상의도 없이 강제로 신문을 넣고 있는 자가 누군지 자못 궁금해 하면서도 매일 계속해서 재미있게 더구나 공짜로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일주일이면 신문이 쉬는 일요일을 빼고 1~2일 정도 거르고 신문이 배달되기 때문에 이제는 아침에 현관문을 열어서 신문이 없으면 왠지 섭섭한 마음까지도 들곤 한다.


처음 몇일 동안은 신문을 읽으면서도 만일 한달쯤 지나서 신문 넣은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신문 구독료를 달라고 하면 오히려 내가 큰소리를 치고 혼내고는 구독료를 주지말고 다시는 넣지 말라고 해야지 하면서 내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집에서 줄곧 10년간을 한가지 조간신문을 꾸준히 구독하였는데 그놈의 IMF 때문에 그 좋아하던 신문도 끊은지 근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매일같이 배달되는 신문이 한달째 계속되자 일말의 불안감이 생겼다.

물론 구독료 문제 때문이다.


어쨋든 나는 한달간 재미있게 구독했으니까 사실 나로서도 구독에 대한 나의 의사가 있다고 봐야 될 것 같다. 더구나 내가 어린 중학생 시절에 신문을 근 1년 배달한 경험이 있기에 신문을 강제로 넣은 직원이 찾아와 신문구독료를 달라고 하면 옛 생각에 마음이 약해 질게 뻔한 일이다. 더구나 어린 소년이 찾아온다면 따뜻한 차라도 한잔 주면서 구독료를 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였다.


내가 신문을 배달하던 중학교 시절 평소 신문을 보던 집의 대문 앞에『0000 신문 사절』이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보는 순간 나의 어린마음이 얼마나 쓰라렸던가?


그 당시 이런 집에는 강제로 몇 달동안 계속해서 넣은 후 신문구독료를 징수하여야 나의 한달치 월급이 되기 때문에 우리 배달소년들은 강제로 주인 몰래 신문을 대문에 집어 던지고 재빨리 도망을 가곤 했다. 간혹 마음씨 고약한 무서운 주인아저씨에게 도망가다가 붙잡혀서혼이 난적도 더러 있었다.


신문을 뭉쳐서 대문위로 힘껏 던지면 집안에서 “야, 신문가지고 가!, 신문값 못 받을지 알어” 라는 주인의 화난 큰소리와 함께 주인이 대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소리가 난다. 그러면 나는 속력으로 도망을 간후 그 집에서 안보이는 골목 어귀에서 까지 와서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나온 주인의 동태를 살펴본후 마치 개선장군 마냥 쾌재를 부르면서 다음 집으로 배달하러 다니던 그 시절!


그 다음날에는 그 집 앞에서부터 상황을 잘 살핀후 똑같은 방법으로 신문을 내 던지고 도망갔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강투』라고 하였다.


이윽고 한달 구독료 수금을 할 때에는 집 주인에게 온갖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듣은 후 그래도 수금을 하면 다행이고 그나마 욕만 먹고 신문값도 못받은 경우가 허다하여 결국 나의 월급에서 공제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신문 구독자가 나쁜게 아니라 우리를 채용한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는 보급소장이 우리의 어린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런 옛일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아침에 이름모를 배달소년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몰래 현관문 앞에 던졌을 조간신문을 들고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언재든지 배달소년이 찾아와 구독료를 달라고 하면 기분좋게 주고 다음부터는 빼먹는날 없이 매일 잘 넣어달라는 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신문구독료를 달라고 오는 사람도 없고 더구나 신문보급소에서 연락조차 없었다.


나는 신문보급소의 습성을 조금은 알기 때문에 한달이 지난 지금쯤은 보급소 직원이 찾아와 한달간의 구독료를 내던지 아니면 지금까지는 무료로 구독했으니까 이번달 부터는 정식으로 계속해서 구독을 요청할것으로 내심 짐작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궁금했다.


궁금하기는 집사람이 더 했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남편이 없는 시간에 말잘하고 끈질긴 보급소 직원이 찾아와 한바탕 설전을 벌일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였다.


또 일주일 지나고 이제는 신문구독료의 지불에 대해서 무관심해졌고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들고와서는 간밤에 있었던 주요 기사를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몇일후 드디어 우리집에 신문을 넣어주는 주인공을 알게 되었다. 집사람이 큰아이 초등학교의 교실 환경정비하러 학부모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평소 안면있는 학부모가 우리집 사람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길 “연재 엄마, 요즘 신문 잘보고 있어, 아빠 회사가 IMF 때문에 직원 봉급이 삭감되어 보충하려고 내가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는데 마침 연재네 아파트를 담당하게 됐거든. 그래서 신문이 남으면 연재네 집에다 한 장씩 넣었는데 남는 신문이 없는 날은 못 넣었어


“왜냐하년 얼마전 연재 엄마가 10년간 보던 신문도 IMF 때문에 끊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 실은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때에는 지금같은 정보화 시대에 아무리 IMF의 어려움이라도 10년간 보던 신문을 끊은 연재엄마를 안스럽게 생각했거든!”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도 연재네는 IMF와 별 관계가 없을거라고 생각을 했었지”



나는 집사람의 이 이야기를 듣고 잔잔한 마음의 감동과 함께 이웃의 훈훈한 정을 느끼게 되였다.


우선 본인이 신문을 배달한다는 사실을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연재 친구의 어머니의 굳굳한 삶의 의지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이지만 신문을 배달할 때, 그때는 석간신문이라 혹시라도 학교 친구들이 신문을 돌리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을 볼까봐 멀리서 친구가 보이면 숨어 다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배달된 신문의 여러면에도 예외없이 IMF 때문에 고통받는 우리 이웃과 나라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우울한 기사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IMF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의 기사와 함께

우리 곁에는 IMF 덕분에 어려울수록 이웃을 생각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살아나고 있다는 희망적인 기사가 많이 넘쳐나서 정겨운 이웃을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1999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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