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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글

한계령

(흥국생명 "세상 엿보기" 퍼온 글)

한계령 길목 공병비(工兵碑)의 사연은?


험산준령을 뚫고 만든 ‘한계령 길’


인생길처럼 굽이굽이 굴곡이 심한 한계령 길. 강원도 인제군에서 한계령을 넘어 양양군 오색에 이르는 ‘국도 44호’ 한계령 구간은 최근 건교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혔다. 내설악과 남설악을 잇는 이 길은 7형제봉과 주전골 등 남설악의 빼어남을 감상할 수 있는데다 한계령 정상(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비경이 매우 뛰어나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지난 7월 중순 폭우에 파손된 한계령 길

지난 7월 중순. 이 도로가 엄청난 폭우에 맥없이 무너지고 곳곳이 폭탄 맞은 듯 유실됐다. 누구보다도 이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피 땀 흘려 길을 닦은 당사자들이다.

이 도로는 1966년 4월 육군 모 군단 공병부대가 첫 삽을 뜬지 71개월 만인 1971년 12월 13일 최 난공정인 한계령의 암벽을 꿰뚫음으로써 완공됐다. 개통식은 1971년 12월 27일.

강원도 동해 양양에서 진부령을 넘어 인제에 이르는 1백20km의 설악산 우회도로 대신 영동과 영서를 46km로 가로지르는 ‘설악산 횡단도로’는 6년 동안의 난공사 끝에 동서는 56km가 단축됐다. 해발 1천m의 높은 산줄기를 뚫고 도로를 닦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


‘공병 125대대’ 이들의 땀과 정열이 있었기에…


연인원 30만 명이 동원된 이 공사에는 10만 달러의 외화와 1억5천만 원의 원화가 들었다. 동원된 차량장비만도 2만2천3백대, TNT 폭약 53t에 뇌관 10여만 발을 터뜨려 20여만 입방m의 바윗돌을 깨었고 4만5천부대의 시멘트가 소요됐다.

양양에서 한계령 방향으로 2.5km. 흘림골 입구를 조금 지나 도로 오른쪽에 ‘공병 125대대’라는 비(碑)가 보인다
.


한계령 길 ‘최후의 연결점…’은 비(碑)가 세워진 곳


‘개척의 완결점. 개척정신은 표고 험한 설악에 도전하여 동서를 잇는데 승리하였노라. 육개성상의 대역사가 오늘 여기서 완결되나니 자연의 신비 속 여기에 우리의 개척정신을 영원히 기념하노라. 최후의 연결점에서 - 1971년 11월30일 제125야전공병대대개척자들’

대설악을 ‘뚫은’ 이들이 세운 기념비다.
자그마한 비(碑)가 세워진 ‘자리’에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있다. 한계령을 정점으로 외설악 쪽에서 길을 뚫고 오르던 7971공병부대 1중대장 정모 대위와 내설악 쪽에서 도전하던 2중대장 반모 대위가 감격의 악수를 나눈 장소다. 군장병들은 설악 횡단도로가 마지막 연결된 이 지점에 시문이 새긴 돌을 세웠다.

이 횡단도로는 공사의 편리보다 아름다운 설악의 ‘살점’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뒀다. 자연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 석축을 쌓고 ‘꼬부랑길’을 많이 만드느라 공사는 더욱 어려웠다. 공사의 40%가 암반을 부수는 작업. 난 공사 중에서도 난 공사였다
.


끊긴 도로, 하루빨리 차가 달릴 수 있기를…


대공사를 마치고 도로가 개통되던 날. 부산출신인 공병대소장 이모 중위(당시 24세·ROTC)는 속초에서 만난 약혼녀 김모씨(당시 24·홍익대)과 ‘젊은 날 땀과 열정이 담긴’ 한계령 길 위에서 군단장 주례로 결혼식을 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연 재해로 인해 지금은 잠시 ‘중단’ 된 한계령 길. 험산준령을 뚫고 도로를 닦았던 이들은 주민들 못지않게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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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과 나의 추억)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한계령과 나의 첫 인연은 1987년 직장생활 초년병 시절이다!

그 당시 우리 사무실에 등산을 좋아하는 선배님(문의식씨)이 계셨는데 그해 늦가을 11월 초에 단 둘이서 한계령 지금의 민박촌에서 하루를 자고 그 다음날 새벽 6시에 장수대를 거쳐 서북능선을 타고 당일 저녁 대청봉 대피소에서 자는 일정으로 산엘 갔었다.

우리는 계획대로 산행 당일 부푼 꿈을 담고 한계령 초입 민박촌을 출발하여 장수대를 거쳐 서북능선으로 진로를 잡고 계속 전진 또 전진 하였는데 문제는 그 날 오후 2시경 가지고 간 물로 라면을 해 먹고 난후 부터 물도 다 떨어지고 또 겁나는 것은 지나가는 등산객을 전혀 얼굴 조차 못 보았다는 것이었다.

새벽 6시에 출발할 때 부터 가을비 정확하게 안개비는 계속 내리고 깊은 산속 사방는 하루종일 안개비 속에 묻혀서 분간을 할 수 없고 그래도 우리는 젊음을 믿고 전진 또 전진~~~~~

하지만 늦가을의 깊은 산속에는 어둠이 너무나 일찍 찿아오고 이정표 없는 서북능선에서 랜턴에 의지한 채 우리는 걷고 또 걸었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그 주위를 맵도는 듯한느낌 이었다.

왜 이리도 목은 타는 지~~

지치는몸과 다리의 피곤함 보다도 타는 목마름이 이렇게심한 고통을 주는 지 예전엔 미처몰랐었지~~

그때 문 선배와 나는 결심했다.

비박을 하기로~~ 마침 문 선배는 등산의 경험도 많았고 월남전도 경험한 백전노장의 베테랑이어서 내심 든든 했었지. 내 마음은~~

우리는 어두운 산길을 랜턴으로 비춰가면서 겨우 비박할 장소(바위틈)을 찿아서 부슬부슬 내리는 늦가을 비를 피해 바위틈에 짐을 내려 놓고 젖은 나뭇가지를 꺽어 불을 피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석유버너를 가지고 다닐 때라 석유를 붓고 나무에 불을 피워 모닥불을 만들고 겨우 다리를 뻗고 누웠는데 왜 이다지도 목이 마른지~~

나는 그때 그 어떤 배고픔도 목마름의 고통에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왜냐하면 배도 너무 고파 가지고 간 과자를 먹으니 씹은 것을 도저히 목구멍으로 넣을 수 가 없었으며 김치국물을 먹어도 왜 이리도 짠지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새벽 6시부터 힘든 산행을 하고 오후 2시 이후로는 물 한모금 못 먹고 갈증에 허덕이는 몸을 겨우 추수리고 어두운 하늘을 이불 삼아 누우니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짐승우는 소리, 빗소리, 낙엽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

정말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가 누운 자리 바로 옆에 피워놓은 모닥불 때문에 우리 둘은 군대식으로 1시간씩 교대로 자기로 했고 나이로 한참 후배(12살)인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서기로 했는데 고참은 정말이지 한시간이 지나 깨워도 일어 나지도 않는다.

매우 피곤한지, 아니면 군대 갔다온 한국인만이 느끼는 짬밥 의식인지~~~

이런 저런 사유로 깊은 밤 홀로 설악산 깊은 산속에서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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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년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하여 인제군 소재 한계령 도로가 많이 유실되고

내가 묵었던 한계령 민박촌이 물에 잠기는 등 많은 비피해를 입어 마음이 아팠다.

빨리 복구가 되어 그 아름답던 자연의 경관을 설악산의 위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보여 주기를 기대하면서 이글을 통하여 나의 작은 약속을 밝히고자 한다.

지금까지 경취좋고 한많은 굽이굽이 한계령 도로를 나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너무나도 쉽게다녔었지만 이번에는 도보로 한계령을 오르고자 한다.

코스는 인제 삼거리에서 시작하여 한계령 정상에 올라 오색약수터 까지 도보로 걷고자 한다.

이번 도보여행길에는 가능하면 나의 사랑하는 큰놈 연재가 대학에 입학하여 그 기념으로 한계령을 직접 아빠와 걸어가면서 이제 막 시작하는 성년의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대학생활에 대한 희망,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살아갈 여러가지에 대하여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고 싶다.

그리고

한계령을 넘어 낙산 바닷가에 가서 푸른 동해 아니 드넓은 태평양을 보면서 연재의 미래를 푸른 내일을 기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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