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23(금) 안개가 심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언제부턴가 설악산 대청봉(해발 1,708m)에 내 힘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자신도 사실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들어 “그래, 내 나이가 어때서, 한번 실천해 보자”하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조금씩 다리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면서 대청봉 등정계획을 하나둘씩 세우기 시작한 지 얼마후 사무실 근무에 여유가 생김에 따라 갑자기 휴가를 내고 홀로 떠나게 되었다.
출발 전날에 일찍 퇴근하여 등산배낭을 꾸민다.
대충 준비사항을 보면
동서울 터미널에서 한계령행 시외버스 06:30분행 한좌석 예약(경비 16,500원)하고,
준비물로는 카메라(캐논 500D, 밧데리, 충전기, sd카드 리더기), 핸드폰, 배낭은 오스프리 큰 것으로 등산복 여벌 한 벌, 속옷 외 양말 등 등산 장갑, 우비, 생수 500리터 2병, 과자, 초코렛, 곶감, 비상약, 혈압약, 렌턴(헤드 및 휴대용) 수건, 썬그라스, 그리고 약간의 현금과 신용카드 등등이었다.
예정 산행길은 한계령휴게소 - 귀때기청봉 갈림길 삼거리 - 끝청봉 - 중청대피소 - 대청봉 - 소청봉 갈림길 삼거리 - 희운각 대피소 - 무너미고개 - 양폭대피소 - 비선대 - 설악동 소공원 정문에서 대장정을 마치는 것이었다.
전날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일찍 들었으나 이내 잠이 오지 않는다. 초등학생 소풍전날의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지금까지의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었던 지난 산행에 얽힌 재밌는 추억들이 떠오른다.
대청봉은 지금까지 세 번 올라갔었다.
첫 번째는 직장 선배(문의식 선배)를 따라서 장수대에서 올라 귀때기청봉을 경유하여 중간에서 비박을 하고 서북능선길로 그 다음날 중청봉을 지나 대청봉에 올랐다가 오늘의 코스대로 희운각에서 비선대를 걸쳐 소공원으로 내려와 그날 강원도 거진 고모님댁에 가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올라왔고,
두 번 째는 그 다음해 1월에 직장동료들과 오색에서 전날 잠을 자고 새벽에 대청봉에 올랐다가 소공원으로 내려 왔는데 그날은 온통 눈천지인 그곳에서 엉덩이 썰매로 내려왔으며
세번 째는 그 이듬해 가을에 동네산악회를 따라 단풍산행 무박2일로 오색에서 올라 소공원으로 내러 온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오르면 생애 네번째 대청봉에 오르는 데 그 이전 세 번의 산행은 나름대로 젊은 혈기로 겁 없이 다녔던 것에 비해 이번에만큼은 앞선 걱정과 두려움으로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매우 나약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씁쓸한 기분이었다.
이내 잠에 못들고 뒤척이는 등 잠자리를 설치다가 핸드폰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새벽 04:20분에 기상!
설레는 마음으로 샤워를 마치고 빠른 동작으로 마무리 준비를 하고 등산배낭을 메었는데 그 무거운 무게감에 압도를 당하고 큰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제와서 무엇을 빼서 무게를 줄인다 말인가? 고민 끝에 휴식시 음악을 들으려 넣었던 휴대용 스피커 하나만 배낭에서 꺼내놓고 그냥 출발한다.
곤히 잠든 아내를 깨워 가벼운 인사를 하고 급하게 서둘러 지하철7호선 수락산역에서 새벽5시32분에 출발하는 건대입구역 방향 지하철 첫차에 몸을 싣는다.
이제야 정말 출발하는구나 하는 걱정과 설레임을 안고 지긋이 눈을 감으며 오늘의 일정을 그려본다.
지하철에서의 짧은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친구 주원에게 카톡으로 출발인사를 하다.
이른 새벽시간에 부담없이 카톡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전하며 오늘 업무차 중국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친구에게 인사도 하고....
모두가 각 자의 삶에서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중년이다. 서로 시간을 내서 산행을 같이 하자는 약속을 하고 카톡을 이내 끝내다.
동서울터미널역에서 하차해서 시외버스를 갈아타려고 부지런을 떨었더니 등에서 새벽부터 땀이 난다. 이상하게 배낭이 몹시 더 무거운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강원도 양양행 시외버스엔 41인승 만석이었다.
거의 등산객 복장인 것 같다. 한계령휴게소로 나를 데려다줄 시외버스는 예정시간 정시에 출발하여 이내 강변북로로 접어들자 왼쪽으로 광나루현대아파트가 보인다.
아! 짧은 외마디로 어머니를 그려본다.
그곳에 어머니가 계시다.. 오늘도 조그만 빈방에서 홀로 누워 계시겠지, 밖의 세상이 가을인지 여름인지 봄인지 모른 채,,,,, 조금씩 없어지는 삶의 추억들을 영원히 잃어 버리지 않으려 꼭 부여잡고 계시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과 그리움을 안고 버스는 내 달린다. 창밖은 짙은 안개와 가을 미세먼지로 희 뿌였다.
1시간 40여분을 달려 원통터미널에서 도착, 약 15분간 정차!
여기서 김밥 2줄을 사다(3천원)
군인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 오늘이 금요일 이라 휴가가는 군인들 같더라.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 원통시내에 왔다.
원통휴게소를 벗어나자 이내 설악산의 웅장한 절경이 안개 사이로 보인다. 장수대 입구에서 승객중 중년의 남자분 한명이 홀로 내린다. 차림새로 보아 장수대를 출발하여 서북능선을 따라 대청봉에 오르려는 등산객인 듯 한데 불현듯 나의 첫 설악산 산행 추억이 더 올랐다. 등산에 대하여 전혀 모르던 나를 문의식 선배께서 이끌고 장수대로 서북능선으로 가던 날, 11월의 초겨울 비오던 날, 긴 산행 끝에 바위밑에서 비박하면서 추위에 벌벌 떨었던 기억 등등....
이런 짧은 추억을 회상하는데 드디어 버스는 09:00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내리니 가을비에 안개까지 너무 심하여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정말이지 안타까웠다. 그 멋지고 웅장한 설악산의 절경을 내 눈앞에서 못 보다니.....
잠시 짧게나마 마음이 흔들린다.
올라갈까? 말까?
그러나 아주 짧은 잠시의 주저함이 있었지만 이내 쉼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드디어 9시10분 안개낀 대청봉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계속 경사로가 심한 길을 오르는데 오늘따라 배낭무게에 내가 지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배낭 무게를 줄인다고 줄였는데 무거운 듯 한 느낌, 경사는 심하고 배낭은 무겁고 안개는 더욱 더 짙어져가고 가을비는 계속 내리고,,,,,,
09:58분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니 한계령 삼거리가 2.3㎞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한시간 가냥 걷는데 경사도가 심하고 배낭이 무거워 두 번이나 잠시 짧게 쉬었다.
아무 생각없이 오르다보니 10시 28분께
중청봉 까지 4.4㎞남았다는 표지석을 보며 아침밥을 먹다.
김밥 한줄을 먹는데 이상하게 잘 먹히질 않는다..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무척이나 힘이 든다. 누구도 아니고 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인 것 같구나.
처절한 내 자신과의 약속이행....
드디어 한계령삼거리 도달하다. 10시 48분!
그러니까 출발 후 거의 2시간을 오르고 올라 여기까지 오다.
내가 사전에 알아본바에 의하면 여기서부턴 경사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했으니 희망을 갖자.
어느 초로의 부부께서 나와 같이 휴식을 하였는데 그분들은 대청봉에서 오색으로 내려 갈 것이라 하면서 내게 야간등산 장비가 있다면 소공원으로 가라고 권유를 한다.
좋은 가을 계절이었지만 날씨 관계인지 등산객들이 많지 않고 뜨문뜨문 지나간다. 그리고 너무나 얄미운 안개는 걷힐 생각을 안하고 올라 갈수록 농도가 더 심해져 어느 산붕우리 하나도 보여주질 않는다.
내가 평소 덕을 쌓지 않은 탓이라 생각하며 걷고 또 걷고..
13시20분에 드디어 하늘이 보이는 끝청에 도착한다.
아직도 날씨는 안개가 심하여 그야말로 바라보이는 것은 모든 사물이 희뿌연 안개속일뿐,....
이런 것이 우리네 인생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여기서 부터는 다소 평탄한 능선길이라 걷기에 아주 좋아 좀더 속도를 내어 걸다보니
14:00에 중청대피소에 도착하다
바람이 엄청 세다.
지척(약600m 거리)의 대청봉이 잠시 보이다가 이내 없어지고
하지만 얄미운 안개는 계속해서 심술을 부려 대청봉이 잠시 보이는가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내 안보이고...
대청봉 정상을 향해 홀로 걷는다.
장엄한 대청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대청봉 오르는 길
환희의 순간, 벅찬 마음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오르고 오른 끝에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내 두발로 내 딛다. 14:30분경!
얼마나 꿈꾸고 올라오고 싶어 했던가? 과연 내 힘으로 올라 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의 존재였던 대청봉에 막상 올라왔는데 너무 심한 세찬 비바람으로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정상에 섰다는 기쁨의 감흥은 이내 없어지고 실제로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겠다는 생각뿐,
대청봉(1,708m)은 설악산의 주봉으로서 예전에는 청봉, 봉정이라고 불렸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금강산과 향로봉을 지나 진부령, 북주릉, 공룡릉을 거쳐 이곳 대청봉을 지난 뒤 중청봉, 끝청, 한계령, 점봉산, 오대산으로 이어진 후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엄청난 바람속에 휘뿌연 안개에 잠긴 대청봉 정상표지석엔 나보다 앞선 일행 여자분 3명과 남자분 두분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수원 금요산악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님들이었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그중 회장님에게 문의해보니 금요산악회 회원들도 비선대, 소공원으로 내려 갈 것이라 하기에 나도 합류해서 함께 걷기로 하였다.
나로서는 어둠속에 혼자 내려오기엔 무척이나 위험 부담이 있어 오색으로 내려오려 했는데 큰 행운을 잡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따라서 당초 계획대로 희운각, 양폭폭포, 비선대를 지나 경치좋은 단풍속의 천불동 계곡을 감상하면서 금요산악회 5명과 함께 하게됐다는 큰 안도감속에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내려오니 15:00! 설악동 소공원을 향해 하산길을 재촉하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멀리 보여야 할 울산바위 및 속초 바닷가, 그리고 울긋불긋 단풍옷을 입은 영롱한 봉우리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직 드센 바람과 흰 안개 뿐.....
자연을 어찌 이길수 있겠는가, 다만 순응하면서 사는 방법 이외엔,,,,
어림잡아 중청대피소에서 소공원까지 소요시간은 5시간 정도라고 하니 밤 8시쯤은 되어야 다 내려갈 듯,
중청대피소를 지나 지나 봉정암 삼거리에서 금요산악회 남자회원님 한분과 합류하였는데 그분 말씀이 산악회장님은 연세가 75세 인데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는 열정과 체력을 지닌 분이라 자랑하신다.
천불동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이 안개 너머로 보이다말다를 반복하니 너무 안타까움속에 걸음을 걷다보니 무너미고개에 16:49분에, 양폭대피소를 17:45분에 지나가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오전 9시부터 힘들게 산행을 하였더니 지친 내 다리가 내리막길에서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더라.
그리고 왼무릎 왼쪽 부분이 내리막길 게단을 내려갈 때엔 통증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천불동 깊은 산속은 어둠이 일찍 찾아 오는 법, 이제부턴 렌턴에 의지해서 길을 걸어야 했다.
내가 가장 맨 앞에 서고 뒤에 금요산악회 회원님들 5명이 따라오는 형세로 밤길을 계속 걷는다. 설악산 깊은 산속의 밤에 걸을 줄이야,,,,
일행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반갑고 든든할 수 가 있을까?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어둠속의 산행길을 실컨 경험하고
비록 오늘 심한 안개로 그 감탄스러운 가을 설악산 비경을 모두 감상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일행분들을 만나 당초 예정했던 산행길을 완주할 수 있었다는 것에 더 이상 기쁨이 없었다.
드디어 소공원에 도착,
시각 20:20분, 만세,,,,,그리고 기쁨의 박수를 치다.
그토록 바라던 대청봉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는 성취감에 가슴깊은 곳에서 부터 뭔가 뭉쿨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오늘 걸은 도상거리는 대략 19.3㎞,
소요시간은 휴식시간 조금하고 11시간 20분소요
소공원에서 잠시 동행했던 수원금요산악회원님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어둠속에 정말이지 혼자 남았다.
출발전 휴가계획을 세울땐 오늘 속초시내에서 홀로 자려고 하였는데 어둠만이 있는 쓸쓸한 소공원 주차장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이제야 아픈 다리를 느끼고 배고픔도 밀려오고 편히 쉴만한 따뜻한 곳이 몹시 그리웠다.
그때 마침 홀로 서있는 빈택시가 눈에 들어오더라.
그때 갑자기 삼척 둘째놈 아파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간다. 그러나 정황상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과연 이 늦은 밤시간에 삼척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어왔지만 일단 택시를 타고 무조건 속초시외버스 터미널 까지 가자고 하였다.
20여분을 달려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바로 강릉가는 시외버스가 마침 있어서 갈아타고 강릉으로 가면서 이제야 막내와 반가운 통화를 하는데 강릉에서 밤 10시 10분쯤에 삼척가는 막차가 있다는 반가운 답변을 전해준다
한시간 조금 못 걸려 강릉에 도착하여 10여분 후 삼척행 막차를 갈아타니 이제야 피로감과 배고픔에 졸음이 쏟아진다.
아!
홀로 여행은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것인가 보다.
누군가가 그렇게 그립고 그립다ㅣ.
잠시 졸다가 눈을 뜨니 삼척 시외버스터미널! 23:10분,,,,
터미널에 막내가 나와 기다리고 있더라,,,, 반가움에 말은 못하고 그냥 아빠의 무거운 배낭을 젊은 네가 메라고 말하고,,,,,,
늦은 시간 터미널 근처에서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족발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다.
막내 아파트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둘이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정겨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다.
아!
꿈만 같은 오늘 하루!
이렇게 하루가 저무는구나.....
오늘 꿈결에서는
단풍 고운 천불동 계곡의 그 아름다운 선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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