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 두
겨울가뭄으로 올 겨울은 눈구경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것과 같이 눈 온다는 소식을 그렇게 기다리지 않는다. 어릴때와 달리 지금은 눈이 오면 출근걱정과 함께 눈이 온 후 질퍽거리는 거리를 걷는 것이 매우 싫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아침에 일어나니 서울에 함박눈이 내려 있었다.
어제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온세상은 하얗게 되었지만 TV와 라디오에서는 출근대란이 일어났고 원인은 기상청에서 눈 소식을 전혀 예측을 못했으며,
아울러 서울시에서도 제설작업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단골 메뉴의 귀에 익은 뉴스들로 법석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다른 날과 변함없이 전철로 향하여 걷고 있다.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 반코트에 두손을 푹 집어넣고 눈이 쌓인 보도를 조심하여 걸어 가면서 이것 저것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직 전철을 제때에 타야 한다는 一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약 2~3분 걸었을까? 구두안 양말에서 차가운 느낌이 전해왔다. 몇 년 신고 다니는 낡아빠진 구두의 밑창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침부터 처량한 생각이 든다. 몇일전에도 구두에서 물이 새는 관계로 돈 몇만원을 들고 구둣가게 앞에 까지 갔었지만 어려운 나의 경제사정을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되돌렸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에는 “다음 눈이나 비가 오면 사기로 하자”라고 생각을 하고 새구두 사는 것을 보류하였지만 오늘은 막상 눈이와서 구두를 꼭 사야겠는데 정작 중요한 돈이 없었다.
축축한 발바닥으로 눈위를 걸으면서 내 마음속까지 축축함이 전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40년 살아온 내 인생에서 아직까지도 구두 한 켤레를 마음대로 못 사신고, 아니 구두 한 켤레 사는데도 이렇게 번민하고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내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이 겨울이 지나면 구두를 2켤레 살수 있을 정도로 경제사정이 좋아질 것도 아니고, 답답한 마음으로 전철에 올라 탄다. 어제나 그제나 매일 반복되는 전철 속의 이름모를 사람들, 내 곁에 앉아 있는, 서있는 저 사람들도 자기의 나이에 관계없이 나름대로 사소하고, 큰일에 모두들 번민하면서 행동의 결정을 못하고 있겠지.
이번 토요일에는 새 구두 살 돈으로 아이들과 함께 눈쌓인 들과 산을 구경하러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철원땅으로 기차 여행이나 해야 겠다.
그 드넓고 눈쌓인 철원평야 들판에서 아이들과 하루종일 눈싸움을 하면서 놀다가 와야지, 집에 가면 물 안새는 운동화가 한 켤레 있으니까 그걸 신고 가서 마음껏 뛰어 놀아야지!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전철은 나의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제부터 약
15분간 또 다시 눈위를 걸어야 사무실에 도착한다.
사무실 직원들은 “겨울가뭄 끝에 눈이 와서 다행이라고” “쌓인 눈 때문에 운전하기가 힘들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이야기 하겠지.
나는 눈 때문에 길거리가 질퍽해서 걷기가 힘들었지만 내구두는 오래되어 내 발에 길
이 잘들어 미끄러지지 않고 잘 걸어 왔다고 이야기 해야 겠다.
1999. 1. 29(금) 출근 길에서